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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존디아에서 마법이 발달하지 못한 까닭

비화/잊혀진 이야기
게시글 등록 시각: 2026. 8. 22.
로존디아에서 마법이 발달하지 못한 까닭
작자 미상
출처 태양의 탑 구판 프롤로그

1. 개요

태양의 탑 구판에서 수록되었으나 개정판에서는 삭제된 이야기1

2. 내용 및 해설

이스나이데(고대 이스나미르부터 내려온 달력) 8555년, 그리고 동시에 듀플리시아드 원년으로부터 55년이 지난 때.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넓은 대륙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부모나 조부모들이 살아가던 땅을 벗어날 줄 몰랐다. 지금으로 따지면 당시 그들이 살던 땅은 기껏해야 롱봐르 만을 둘러싼 해안지역과 이진즈 강 하류의 비옥한 충적평야 일대에 불과했고, 이후 대륙 전체에 이름을 날리게 되는 5대 도시 가운데서도 겨우 달크로즈 하나만이 간신히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이후 오게 될 각국 간의 심각한 해양권 다툼과 1, 2차 롱봐르 전쟁에서 가장 중대한 전략적 요충지로 떠오른 롱봐르 만의 블로이아이 군도, 그곳의 최대 항구이자 모든 항구도시의 시조라고 불리는 아이즈나하 항조차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때였다.

듀플리시아드 55년이라는 햇수가 가리키듯, 그때는 이후 대륙 최강국으로 떠오르게 되는 신생국가 이스나미르가 건국된 지 55년밖에 되지 않았던 때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스나미르’라는 나라는 55년 이전에도 존재하고 있긴 했다.

우선 흔히 ‘고대 이스나미르’라고 부르는 알려지지 않은 시대가 있었다. 당시에 ‘고대 이스나미르’라는 나라는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유일한 국가였다고 하나 그 시대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으며 역사도 규명되지 않아 이스나미르의 시작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현 이스나미르의 근간을 이루는 ‘엘라비다’ 족이 세운 몇 개의 부족국가들이 전통적으로 ‘이스나미르’라는 이름을 써 왔고, 그런 나라들이 몇 번이고 멸망하거나 타국에 흡수되는 가운데서도 어디선가 ‘이스나미르’라는 이름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명맥이 이어져 왔었다. 그러나 현재의 ‘이스나미르’는 어디까지나 듀플리시아드 왕가를 연 건국왕 이센차 듀플리시아드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이는 그 후 왕조가 바뀌지 않았다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 바로 ‘듀플리시아드의 이스나미르’만이 거대한 영토와 힘을 가진 나라로 성장하여 세력을 떨쳤고, 다른 ‘이스나미르’들은 대부분 소국이나 부족국가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것이 보다 큰 이유라 할 것이다.

이스나미르 왕가를 세운 듀플리시아드 가문의 첫 왕이자 건국왕인 ‘드라니 이센차’, 즉 고귀한 이센차라고 불리는 이센차 듀플리시아드가 오랜 영웅적 통치 끝에 영원한 잠에 든 것이 듀플리시아드 41년. 아버지의 건국을 대담한 지략과 조언으로 보좌했던 제1왕녀 미란디아가 중년에 접어든 40대의 나이에 그 뒤를 이었고, 여왕의 뛰어난 정치력 아래 이스나미르는 점차 비슷비슷한 소국들 사이에서 성큼 강국으로의 도약을 준비하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한 이스나미르의 움직임을 가장 불안한 눈으로 주시한 것은 당시 롱봐르 만 일대의 비옥한 땅이란 땅은 모조리 차지하고 있던 강국 세르무즈였다. 그 시기에 롱봐르 만 부근에서 도시국가들을 포함하여 개별적 세력이라고 할 만한 곳은 이십여 곳을 헤아렸는데, 이 가운데 세르무즈에 조공을 바치는 곳이 열한 군데나 되었다. 그때 세르무즈가 좀더 넓은 땅으로 세력을 뻗치려는 생각을 했었다면 지금 대륙의 판도는 좀 바뀌어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알려져 있던 땅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후 반성적인 세르무즈의 학자들에 의해 분석된 바와 같이, 그 이유는 지금도 세르무즈 국민의 대부분을 이루는 ‘마브릴’이라는 민족의 지나치게 투쟁적인 민족성에 기인했다. 대륙 최고의 전투 민족이자, 야만성에서 조금 발전한 것에 불과할 정도로 잔인한 학살자로서의 본능에 충실했던 이들은 피 튀기는 전쟁을 통해서 얻어낸 땅을 삼키는 데에서만 희열을 느꼈고, 아무 저항 없는 빈 땅에 말뚝을 박으며 나아가는 것에 대해선 도통 관심이라고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생국가 이스나미르는 이미 건국왕 드라니 이센차 시대부터 등뒤의 드넓은 빈 땅에 관심을 갖고, 그곳만이 새로운 도약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는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 이스나미르 국민의 대부분을 이루는 민족인 ‘엘라비다’는 마브릴 족과는 달리 고대 이스나미르의 전승에서 이어진 문화적 전통과 창조적 욕망이 강했으며, 그런 의지가 높이 평가받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스나미르의 건국왕인 ‘드라니 이센차’야말로 그러한 전통에 가장 잘 맞는 인물이었다.

여기서 중대한 역사적 사건을 위해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듀플리시아드라는 달력이 생기기도 전, 젊은 몽상가로서 행동가의 측면도 겸비하고 있던 이센차 듀플리시아드는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이진즈 강의 수원을 찾아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지금도 대륙에서 가장 큰 강인 이진즈, 그때까지 단지 그 젖줄에 의지하기만 하던 당시의 인간들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발상의 전환이었다. 물론 그때의 이진즈는 지금보다 바다로 들어가는하구가 좁았고, 따라서 이센차는 수원도 멀지 않은 곳에 있으리라는 손쉬운 생각을 했다.물론 그건 지리에 대해 무지한 이센차가 터무니없이 간단하게 생각한 것이다.

지금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진즈 강은 롱봐르 만을 싸고돌며 서서히 서쪽으로 거슬러 가다가 멘느 강과 갈라지는 지점에서 갑자기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정면으로 직진하고, 다시 두 갈래로 갈라져 지금의 달크로이츠 산맥에나 가야 그 진짜 수원을 발견할 수 있는 엄청나게 긴 강이었으므로 당시의 이센차로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계획을 세웠던 셈이다.

그러나 그는 이진즈의 수원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가 수원 대신 발견한 것은 전혀 엉뚱한 것이었다.

그들이 수원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마주친 이진즈의 지류 크로즈님 강은 당시의 인간들로서는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큰 반도인 테르시텔레 반도를 완전히 가로질러 지금의 동쪽 바다로 빠져나가고 있는 좁고 긴 강이었다.

비록 크로즈님 강의 끝까지 가 보지는 못했으나 강을 따라가던 그들은 강을 끼고 동쪽으로는 고개, 나머지는 절벽으로 가로막혀 천연의 요새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분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곳에는 사람 한 명 없는 아름다운 성이 우뚝 서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성은 인간의 손이 오랫동안 닿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모된 곳이 조금도 없이 완벽하고 깨끗했다. 허물어진 데 하나 없었고, 색 바랜 돌 하나 없으며, 닳지도 부서지지도 않고, 저주나 봉인의 흔적조차 없었다. 더구나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성곽공사가 불가능한 험하고 좁은 언덕에 세워졌으며, 그 일대에서 인간이 살았던 흔적은 까마득한 옛날에 사라져 버린 듯했다. 오직 남은 것은 홀로 우뚝한 성뿐이었다.

그 순간, 이센차는 직감적으로 고대 이스나미르의 수도였다는 달크로즈(순백의 보석) 성을 떠올렸고, 그 성에 걸려 있다는 ‘처음 세워진 그 모습대로 영원하라’라는 이름의 묘한 마법을 기억해 냈다. 그것은 고대 이스나미르 인들을 도와 달크로즈 성을 건설한 ‘이스나에’라는 이름의 신성한 영혼들, 그들 중에서도 귀족이라 할 수 있는 이스나에-드라니아라스들이 걸어 주었다는 마법이다.

그들로 인해 이 세상에 처음으로 이스나미르(이스나에가 세운 나라)라는 이름이 만들어졌고, 그들이 건 마법의 힘 덕분에 주춧돌부터 하나씩 차례로 파괴되지 않는 한 절대로 손상되거나 무너지지않는다는 성이 바로 달크로즈 아닌가.

그의 생각은 성안을 살펴보고 나서 더욱 굳어졌다. 고대의 달크로즈 성에 있다고 알려진 신성한 장소, 타로핀(Tarophin) 광물로 지어진 홀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대 발견으로서, 이후 이스나미르가 고대 이스나미르의 전통을 이은 나라로서 군림하게 되는 결정적 근거가 되었다. 후대의 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이센차가 새로운 이스나미르를 세우겠다고 결심한 것이 바로 이 발견에서 비롯되었으리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이후 건국을 보지 못하고 죽었으나, 그곳을 일단 떠나면서 이센차는 누구보다도 이스나미르 건국의 기틀을 닦는 데 공헌했던 그의 절친한 동료이자 친구, 빈스 란가르크 경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눈에는 저 땅에서 거대한 버섯들이 잔뜩 어깨를 다투며 솟아오르는 것이 보이네. 자네도 보이나?”

이센차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버섯이었다… 아니, 물론 지금도 여전히 그 분지는 평평한 곳이 아니라 정말로 버섯처럼. 좁은 땅이 수없이 솟아올라 잇대어진 모양이며, 가끔은 그곳에 도시를 건설했다는 것이 기적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세르무즈 인들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가능성을 보았고, 가능성은 현실이 되었다. 듀플리시아드 원년, 고대 이스나미르의 신성한 수도의 이름을 그대로 딴 달크로즈 시가 그곳에 세워진 것이다.

그렇게 세워진 이스나미르와 수도 달크로즈가 불패의 요새로서 명성을 얻으며 승승장구하던 듀플리시아드 55년경, 세르무즈는 대책에 부심했고, 중추부의 여론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 하나는 지금까지의 노선을 유지하여 그 일대 군소국들의 여론과 군사력을 모은 다음, 이스나미르를 힘으로 정복하자는 주장이었다. 그것은 명분도 좋고 실리도 좋으나 언제 가능하게 될지 알 수 없는 막연한 탁상공론이기도 했다. 당장 이스나미르를 쳐서 단숨에 눌러버릴 힘이 없으니 이런 논쟁도 생기는 것인데, 했던 말을 또 반복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명분도 별로 없고 실리도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썩 내키지 않는 주장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이스나미르처럼 저 먼 땅, 대륙의 안쪽을 개발하자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 주장은 처음엔 그리 힘을 얻지 못했으나 몇 번의 소규모 전투에서 연전 연패하여 전투민족의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지고 나자 다시금 부상하기 시작했다. 주로 이 주장에 찬성하는 것은 세르무즈 왕가에서도 소수파인 알스님 왕비 지지파, 즉 왕비의 오빠 단스킬 아미냑으로 대표되는 외척의 세력이었다.

반대로 다수파는 현 국왕의 모후인 렌 태후의 친척들이었고 그들은 전자의 주장을 지지했다. 즉, 세르무즈는 내부적으로도 두 외척의 대립으로 크게 곤란을 겪고 있는 상태였다. 대부분의 귀족들이 왕비파 아니면 태후파였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귀족들은 제3의 세력이 되기는커녕 양쪽의 등쌀에 견디기조차 힘겨웠다. 이들의 대립이 언제부터 시작되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갔는지는 적지 않겠다. 다만 대립은 점차 치명적으로 격화되었고, 이로 인해 알스님 왕비가 세르무즈 역사상 처음으로 비의 자리에서 폐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래 왕비가 되기 전부터 강대한 아미냑 가문의 수장으로 당당한 지위가 있었고, 아름다우면서도 오만하기 이를 데 없던 알스님 아미냑. 후일 둘을 비교한 학자들에 따르면 그녀는 왕비 시절의 렌 태후와 굉장히 비슷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태후가 되고도 한동안 섭정을 했고, 그 후에도 친동생을 총리로 삼아 지배권을 내놓고 싶어하지 않던 렌 태후가 그런 알스님 왕비를 경계했던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알스님 왕비, 아니 이제 알스님 아미냑으로 돌아간 그녀는 치욕과 분노로 한동안 왕가와 정면대결도 불사할 분위기였지만, 오빠 단스킬의 충고로 새로운 길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즉, 세르무즈를 떠나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대륙의 저 내부로, 바로 이스나미르처럼.

전형적인 마브릴 족인 그녀가 투쟁이 아니라 건설을 택했다는 자체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것도 단스킬 아미냑의 독특한 정치력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세르무즈에서의 2위밖에 되지 않는 권력을 내던지고, 그들은 과감히 새로운 땅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나아갔다.

알스님과 단스킬을 따라 세르무즈를 떠난 자들은 귀족과 평민을 합쳐 3천여 명에 불과했다. 물론 중심에는 권력투쟁에서 진 아미냑 가문의 추종자들이 있었다. 아미냑이 떠난 뒤 바람막이가 사라진 상황에서 왕가의 보복을 받을 것을 두려워해 따라나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땅으로 가서 한몫 잡아 보려는 모험가나 진귀한 산물을 노리는 상인들, 좁은 땅에서 자기 것을 얻지 못하고 좌절한 농민들, 죄를 짓고 추적을 두려워하여 새로운 신분을 얻으려는 자들 등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그 뒤로 꼬리를 물었다. 반은 단스킬의 선동이 주효한 탓이고, 반은 개척정책을 편 이스나미르의 비약적 발전이 좁은 땅의 패배자들을 자극한 것이다.

많은 사람과 많은 짐 탓에 행렬은 느릿느릿 움직였고, 몇 번인가 존재조차 몰랐던 부족들의 습격이나 알지 못하는 땅의 갖가지 위험들로 인해 숫자는 줄고 처음의 의지는 약해져 갔다. 그래서 ‘땅이 있는 한 멀리’ 가보겠다고 했던 처음의 계획은 괜찮은 땅이 나오면 어서 정착하자는 쪽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들은 그래도 익숙한 자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진즈 강을 따라 거슬러 가고 있었는데 이스나미르의 드라니 이센차보다는 훨씬 그 수원에 가깝게 접근해 간 셈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아세이유 시에 해당하는 땅에 도착했을 때, 몇 년간의 장정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끝나 버렸다. 사람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은 도시, 풍문으로도 전해 듣지 못했던 거대한 문명의 자취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자취라고는 하나 대부분은 폐허였다. 그들이 유적을 발견한 그날과 그 다음날, 그리고 그 후로도 7일 동안 계속해서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함께 온 아스테리온(죽음의 무녀)이 오랫동안 이 땅에 깃들여 있었을 신성한 영혼들과 정령을 위한 봉헌제사를 각각 올리고서야 그 비는 멈추었다. 그후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정한 그들은 나라의 이름을 로존디아, 즉 ‘이슬비의 땅’이라고 이름지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이름 모를 유적의 탐사였고, 성과는 대단했다. 곳곳에서 버려지다시피 한 보물들이 숱하게 발견되었던 것이다. 호두 알만한 루비나 에메랄드, 비둘기 알만한 비취,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 같은 것들이 여러 개의 석실에서 무진장 나왔다. 그것들은 보석상자 같은 곳에 담겨 있지도 않았다. 그냥 주발 같은 데 들어 있거나 테이블 위에도 굴러다녔고 심지어는 먼지바닥 속에서 밟히기도 했다. 몇천 명밖에 안 되는 국민이 모두 평생 낭비하고도 몇 대에 걸쳐 물려줘도 좋을 재물이 난데없이 안겨진 꼴이었다. 로존디아는 이제 시작이었다.

그동안 그들에게는 커다란 변화가 한 가지 있었다. 바로 그들의 지배자인 알스님 아미냑과 단스킬 아미냑이 다른 의미에서 같은 성을 쓰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이미 부부가 되어 있었다.

남매가 어떻게 부부가 될 수 있느냐는 논란을 그들은 요령 좋게 잠재웠다. 본래 아미냑 가문에는 알스님이라는 딸 하나밖에 없었다. 따라서 알스님이 왕비가 되기 전에도 아미냑 가문의 수장은 단스킬이 아닌 알스님이었던 것이다. 단스킬은 본래 알스님과는 육촌이 되는 종형제로서 알스님이 왕비가 되자 아미냑 본가에서 수장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 스물이 넘은 그를 입양했다. 그런데 알스님이 이제 다시 왕가의 성을 버리고 아미냑 가문으로 되돌아왔으니 단스킬이 계속 있을 필요는 없어졌고, 그러니 그는 본래의 가문으로 적을 옮겨서 알스님과 결혼할 수 있게 된다, 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그런 까닭에 국왕을 추대하는 과정에서도 아미냑 본가인 알스님이 여왕이 되고 단스킬이 그 부군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로존디아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여왕이 많다.

물론 이후 세르무즈는 이들의 소식을 듣고서 남매끼리 결혼해서 만든 패륜의 나라라고 버릇처럼 비꼬게 되었다. 물론 알스님 여왕과 단스킬의 입장에서는 세르무즈만큼 미운 나라가 없다. 세르무즈와 로존디아, 같은 마브릴 족에서 파생된 두 나라가 지금까지도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게 된 시작은 여기부터였다.

로존디아는 주로 남쪽보다는 북쪽으로 확장해 나갔다 국력이 어느 정도 축적되기 전에는 세르무즈와 부딪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랜 발전을 거듭한 땅과는 달라 옛날의 생활수준을 금방 되찾기는 힘들었다. 수많은 보물을 발견한다고 해서 국민의 숫자나 군사력이 갑자기 충원되지는 않았고, 충돌을 막고자 교역로를 닫고 있으니 보물이 금방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으로 바뀌지도 않았다.

주위에는 듣도 보도 못하던 갖가지 원시부족들이 살아가고 있었지만 천성적 전투민족인 마브릴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대부분을 정복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놓았던 마을과 도시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개척은 정복만큼 쉽지 않았다. 세르무즈에 살 때의 수준과는 아직도 몇 년으로는 당겨질 수 없는 간격이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또 한 번의 기적이 찾아왔다.

알스님 여왕은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그들이 처음으로 새 땅에 도착하여 입을 맞추고 비가 그치도록 봉헌제사를 올린 바로 그곳, 폐허가 된 유적이 언덕이나 숲처럼 흩어져 산재한 그 땅이 반으로 쭉 갈라지면서 금빛 광채가 솟아오르더니 하늘까지 닿는 꿈이었다.

여왕은 사람들을 시켜 꿈에서 본 그곳을 파게 했다. 대발견이었다. 세르무즈에서 왕족이자 귀족이었던 그들조차 구경하기 힘들던 신성한 광물 타로핀으로 된 검은 석판이 나오고, 돌궤가 나왔다.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굳은 광물인 타로핀을 깨뜨려 궤를 열고자 했다면 몇 년 갖고는 어림도 없었을 테지만, 궤는 여왕의 앞으로 운반되어 여왕이 손을 대자 저절로 열렸다(어쩌면 이후에 꾸며진 이야기였을 것이다).

궤 안에는 보석 같은 것은 없었다. 아직도 그 안에서 나온 것이 무엇 무엇이었는가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궤를 여는 자리에는 여왕과 단스킬, 그리고 몇 명의 총신들만이 있었을 뿐이었고, 그들조차 이후 비밀을 지킬 것을 생명에 걸고 서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이후 드문드문 알려진 바로는 그 안에서 고대 이스나미르의 지혜가 담긴 문서와 비단 두루마리들이 1백여 개나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 그 궤는 위정자의 기술에서부터 당시 그들로서는 필요조차 없었던 범선을 건조하는 기술까지, 고대의 문명이 남긴 찬란한 발자취로 가득했다. 단, 거기엔 고대 이스나미르인의 최고 기술인 마법에 대한 언급만은 없었다.

궤와 함께 나온 타로핀 석판에는 거대한 문이 음각되어 있었다. 근처의 유적에서도 본 일이 없었던 문이었다. 문이 조각된 뒷면에는 아스테리온 무녀들만이 읽을 수 있던 고대 이스나미르의 언어로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었다.

그대가 찾고자 하는 것은

영원을 살아갈 고향인가?

문을 찾고 문을 통과하라

해답은 처음부터 준비되었다

여왕은 이것이 로존디아의 수도를 정해 주려는 고대의 신성한 영혼, 이스나에들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적 안에는 그 비슷한 문도 존재하지 않았다. 몇 번인가 탐험대가 조직되었지만 하나같이 실패했다. 결국 문은 여왕의 생전에는 찾아지지 못했다.

이후 알스님 여왕은 로존디아를 무리 없이 잘 다스렸으며, 가장 가까운 조언자였던 남편 단스킬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마흔 남짓한 나이로 죽은 후에도 과거의 조급하고 오만한 성정을 버리고 공평한 통치를 한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4대 왕인 시이를 2세에 이르러 로존디아는 대륙 중앙의 곡창지대로 떠오른 드라니아라스 대평원에서 새로 일어난 나라들의 압력으로 인해 이진즈 강 유역을 떠나 서쪽으로 쫓겨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역사에 다시 없을 보물을 발견한 그들이 왜 그때까지도 국력을 키우지 못했던 것일까.

아마도 그들은 너무 엄청난 보물을 발견한 탓에 지나치게 비밀스러운 성향을 갖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보물을 남과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비밀이 많은 왕국에서 외부인은 철저히 출입이 통제되었고, 외국과 오가는 산물은 더욱 보잘것없게 되었다.

로존디아는 당시 재물로는 전 대륙의 어느 나라보다도 부유한 상태에 있었지만, 어떤 나라도 그 사실을 몰랐다. 여전히 인구는 적었고, 폐쇄성 속에서 발전은 없었다.

그들은 보물을 싸안고, 보물을 얻은 땅을 떠났다. 왕의 물건들 속에는 알스님 여왕이 비밀리에 물려 준 타로핀 궤와 석판도 함께 숨겨진 채 들어 있었다. 그것은 그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왕실의 비밀로만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보물을 참보물로서 이용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진즈 강으로 합쳐지는 수많은 좁은 지류들을 지나고, 황무지와 돌산뿐인 땅을 걸어간 끝에, 그들은 놀랍게도 50여 년 전의 돌판에 새겨진 것과 아주 흡사한 문과 마주쳤다. 그러나 그건 새로운 기적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씁쓸한 발견이었다. 그 거대한 문은 세월의 풍상 속에서 늙어 있었고, 황량한 땅 가운데는 그 문뿐, 주위엔 아무런 문명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다못해 유목민이 살다간 흔적조차 없었다. 게다가 문은 반이나 무너져 있었다.

그러나 무슨 짓을 해서든 전쟁으로 흩어진 민심을 모을 필요가있었던 시이를 2세는 과장스러울 정도로 이 발견을 대대적으로 축하하고 이스나에들의 가르침에 감사하는 제를 올림과 동시에, 이곳에 새 수도를 세울 것을 천명했다.

그러나 문이 서 있는 곳은 너무도 메마른 땅이었고 강은커녕 시내 하나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조금 더 북쪽으로 가서 그나마 나무 몇 그루라도 있는 약간 나은 땅을 찾아 그곳에 근거지를 정했다.

당시 등극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왕이던 시이를 2세는 야심찬인물이었다. 왕은 로존디아가 왜 재물을 발전으로 바꾸지 못했는지 몸소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고대의 지혜를 왜 활용하지 못했는지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나라의 기틀을 완전히 새로 세우는 일이었다. 그는 새 수도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고대의 전설 가운데 작은 달의 여전사인 파비안느 다음으로 유명한 존재이자, 3월 달력의 상징이며, 또한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인물인 ‘처녀 아르나’를 국가의 상징으로 택했다. 그리하여 도시의 이름은 ‘아르나의 축복’, 즉 ‘아르나브르’가 되었다.

이는 로존디아가 여왕에서 시작된 나라라는 점에서, 그리고 처녀 아르나가 기존의 전통과 제약을 모두 깨고 자신의 사랑을 쟁취한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세르무즈에서 독립한 그들 나라의 이미지와 잘 맞았던 까닭이었다. 또한 개국조인 알스님 여왕과 단스킬 공의 관계를 아르나와 아르나의 연인인 레오 로아킨에 비유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레오 로아킨은 신성한 영혼인 이스나에 가운데서도 가장 고귀한 지위인 이스나에-드라니아라스의 일원으로서 연금술의 창시자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단스킬 공이 마법사였다는 것과도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갔다.

그의 시도가 야심적이었던 이유는, 이 주장이 당시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여 이미 세르무즈의 세력을 능가하고 있던 이스나미르의 심기를 건드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처녀 아르나’는 엘라비다 족이었다는 해석이 당시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이미 이스나미르 땅에는 아르나의 이름을 딴 아르나 강과 아르나 시가 존재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 이름들은 이스나미르가 일부러 지은 것이 아니라 개척자들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 지역 엘라비다 토착민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보다 신빙성이 있었다.

그러나 대륙의 수많은 전설들 가운데 훌륭한 것들은 거의 엘라비다 족들이 독차지하고 있었고, 마브릴은 전투 기마민족인지라 문화적 전통이나 기록은 보잘것없었다. 더구나 마브릴 족은 본래 이 대륙 출신들이 아니었다. 이 당시 발견된(혹은 재발견된)대륙의 서쪽 기둥, 스조렌 산맥을 넘어왔다는 기록이 어렴풋하게, 그것도 불확실한 형태로 남아 있을 뿐이었고, 대륙의 토착민은 엘라비다 쪽이었으므로 대륙의 전설들이 엘라비다 위주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스나미르는 당연히 저들의 전통을 로존디아가 도둑질해 갔다며 크게 분개했다. 겉으로는 그러했지만 아마도 이스나미르는 몇 대를 거치며 강화된 국력을 무슨 핑계로든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두 나라는 개국 이후 처음으로 드라니아라스 대평원에서 한바탕 맞붙었다. 그러나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확대될 사이도 없이 아직 이동 직후 국력을 다지지 못한 로존디아는 크게 패배하고 말았다. 이스나미르는 여세를 몰아 로존디아의 새 수도라는 아르나브르를 완전히 점령해 버리려 했다.

그런데 분명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나미르 군은 평원을 벗어나 황무지로 되돌아가는 로존디아 군을 제대로 추격할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 이스나미르는 도대체 그 문제의 ‘아르나브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뒤쫓아가면 나타나리라 했는데, 수십 개의 작은 부대로 나뉘어 개미떼들처럼 황무지를 누비며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로존디아 군을 하나하나 추격하는 것은 너무도 소모전의 양상이 짙었다. 이만하면 본때를 보여 줬겠지, 하고 이스나미르는 물러갔다.

이스나미르가 그 도시 아르나브르를 찾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건 이름만 있을 뿐 아직 주춧돌 하나도 놓여지지 않은, 다른 곳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황무지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이스나미르 군도 몇 번쯤은 로존디아 잔병을 따라 그 아르나브르의 땅 위를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패전 후 시이를 2세는 전략을 바꾸어 아르나브르의 위치를 철저히 숨기면서 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그는 우려하는 신하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마르지 않는 우물을 파서, 온 땅의 짐승들을 불러들이리라.”

국왕을 비롯한 세력은 모두 일단 다른 도시에서 지내면서 그곳이 수도인 양 행세했다. 그리고 알스님 여왕 때부터 물려져 내려온 문제의 타로핀 궤 속에서 나온 문서, 거기에서 건축에 관련된 기술을 모조리 총동원하여 엄청난 토목공사가 시작되었다. 아르나브르는 완전히 계획된, 대륙 최대의 도시로 만들어졌다. 비록 사는 사람은 거의 없긴 했지만······.

아르나브르가 완성된 것은 시이를 2세의 왕위를 물려받은 단스킬(알스님 여왕의 부군 이름을 딴)국왕의 치세도 거의 저물어 갈 무렵이었다. 그동안 로존디아는 과거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재물과 기술을 총동원하여 최고의 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일꾼과 기술자들이 모여들어 국민을 증가시켰고, 타로핀 궤에서 나온 기술들은 공공연히 국민들에게 전파되어 생활수준을 일신시켰다. 상업을 한 번 열어 놓자 전 대륙의 좋다는 물건들이 모두 아르나브르로 모였다. 그 어느 왕실보다도 아낌없이 돈을 뿌렸기 때문이었다.

아르나브르는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명성은 서서히 사해에 떨쳐지기 시작했다. 로존디아의 전성기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 무렵, 이스나미르의 엘라비다 족들은 현재까지도 불멸의 상업도시, 상인들의 영혼의 고향이라고도 불리는 도시국가 리에주를 건설하느라 몹시 분주했다. 그들은 단스킬 국왕이 결국 그 수도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아르나브르’로 선포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예전과 마찬가지로 분개했으나, 그때처럼 군대를 이끌고 엎어 버리러 가지는 못했다.

이 당시 대륙의 인간족 사이에서는 로존디아, 이스나미르, 세르무즈의 세 국가가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떠올라 있었고, 그 외의 군소국가들이 대륙 중앙부에서 각축전을 벌이는 양상이 되어 있었다. 이스나미르 북방, 대륙의 가장 북쪽에는 노른슨 산맥과 아르나 강을 경계로 자신들의 땅에 웅거한 채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노르마크 족(엘라비다 족의 한 지파)들이 있었다. 그리고 세르무즈 서쪽의 스조렌 산맥 아래에는 세르무즈와 로존디아 양쪽에 조공을 바치는 스조렌이라는 국가가 넓긴 하지만 실속 없는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알스님 여왕과 단스킬 공이 세운 로존디아가 비록 대륙 최고는 아니라 해도, 2위의 국력을 자랑하며 번영하고 군림한 것은 이스나이데 8710년, 즉 듀플리시아드 210년경까지로 기록되어 있다.

8710년은 이스나미르에 왕립 마법 학교가 세워진 해이다. 세르무즈는 약 2년 뒤에 비슷한 것을 그들의 수도 하라시바에 세웠다. 로존디아가 그후 이스나미르와 세르무즈에 결정적으로 뒤쳐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타로핀 궤에서 나오지 않은 단 하나의 학문, 바로 마법 때문이었다. 그들은 타로핀 궤에서 나온 지식들의 마술처럼 놀라운 작용에 경도된 나머지 그 이상의 것, 진짜 마법은 찾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1. 1. 작가 왈, 불필요하고 긴 내용이라 개정판에선 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