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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보석의 기사

비화/전해지는 이야기
게시글 등록 시각: 2026. 8. 29.
녹보석의 기사
작자 엘리종
출처 세월의 돌

1. 개요

고대 이스나미르 왕국, 이스나에의 무녀인 ‘레 클로슈’ 엘리종이 지은 예언시다. 총 343연의 분량이나 작품에서는 일부만 발췌되어 있다.

녹보석의 기사가 누구이고 무엇인지 작중에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세월의 돌을 전부 읽고 나면 이 사람을 가리킨 것임을 알 수 있다.

2. 내용

2.1. 1연

자 이제, 그 기사의 이야기를 한번 해 볼까요?

겨울의 끝은 봄, 니스로엘드가 가고 프랑드의 꽃이 피도록

누구나 기다리고 기다리게 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네 계절을 되찾아 닫혀버린 시간을 열어놓고자

열네 별이 은밀히 세상에 내려 준 그 이야기를?

나는 할 수 있어요. 내 노래 속에는 운명의 속삭임이

숨어 있죠, 그 누가 내려 주었던가요?

내게 거울을 보듯 세상 사람의 미래를

들여다보도록 하는 예언의 힘을.

당신이 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2.2. 78~86연

“기사여, 이마의 땀을 씻을 시원한 물을 드리겠어요.

세월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 떨어지는 것이건만

고된 여행이 준 피로로 그대의 눈은 흐리군요.

잘 닦은 유리구슬은 예언자의 한마디보다 낫답니다.


이걸 보세요, 마술에 쓰이는 작은 장갑,

가느다란 꽃줄기와 실꾸리, 봉헌을 위한 빛나는 돌들

그리고 붉은 열매와 하얀 찻잔이 보이지요?

준비하는 것이 좋아요, 뭐든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대, 미래가 궁금한가요? 아니면 과거?

두고 온 연인과 친구의 마음을 시험하고 싶나요?

한번 다짐한 그대의 마음이 변할 것이 두려운가요?

예기치 못한 불운이 모두의 앞을 가로막을까봐?


그대가 들어와 앉은 누추한 오두막, 검은 밤 가운데

신비가 흐르는 것이 느껴집니다.

손을 이리 줘 봐요, 불빛에 비춰 볼 수 있게

그래요, 이런 손 지도는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지요.


(처녀의 머리카락을 엮어 브로치를 만들 때면

우리는 삼단 같은 가닥이 끊어지지 않도록

재빠르게 바늘을 놀려 리본을 잡아매면서도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지요. 조심!)


기사여, 희한한 약초며 사향 냄새가 두려운가요?

풀꽃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온갖 안식들

잘 마른 풀과 라벤더의 향은 행복한 잠을 주지요.

그대도 마른 풀 자리에 눕는 것이 좋을 거예요


꿈을 꾸도록 해요. 이곳 안식의 오두막에서

그대가 원하는 꿈을 나무천장에 그려보세요.

들보를 가로지르는 생쥐에 주의를 빼앗기면 안돼요!

서서히 미래가 떠오를 거예요. 그렇게, 서서히.


꿈의 흰 윤곽이 춤추며 그대에게 내려옵니다.

숲 속에서 가장 빛나는 잎사귀, 마름모꼴의 초록빛

깨어질 듯 연약한 녹색의 꿈을 꾸며 달리는군요.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났던가요, 이 꿈을 꾸기 위해.”


황야에서 오두막을 지키던 여인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사라져가는 낮은 천장과 짚 지붕, 그리고 다가오는 환각

그런데 웬일인가? 가슴을 찌르는 갑작스런 고통이라니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이 그의 가슴 가득 들어찼다.

2.3. 340 ~ 343연

기사의 여행은 끝나지만 끝난 것이 아니니
살아 있는 자의 여행은 끝나는 법이 없는 까닭이다.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 옷깃은 낡아 떨어지고
잃은 것에 대한 고뇌로 내딛는 발걸음은 무거우나

그대가 가져다준 봄이 겨울 들판에 싹을 틔우고
그대의 존재조차 모르는 얼굴들에 웃음꽃이 핀다.
새로운 여행 앞에서 망설이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잃어 얻은 상처만큼이나 얻은 것을 잊지 않으리니

그대의 이름은 잊히고 핏줄 역시 사라져
기억하는 자 없고, 업적은 스러지리라.
이젠 스쳐 가는 행인, 또 평범한 이웃일 뿐이지만
찬란한 녹색의 보석은 결코 그대를 떠나지 않으니

그대, 녹보석의 기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