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아룬드 타로 메이저 아르카나의 16번 카드.
2. 내용
타로의 메이저 아르카나 가운데 탑 카드(The Tower)에 할당된 번호는 16번이다.
이 카드에 그려진 그림은 검푸른 바다 가운데 우뚝 솟은 세 개의 탑이다. 가운데 있는 가장 커다란 탑은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는 모양이다. 하늘은 어지러운 빛으로 번쩍이며, 파도는 탑을 삼킬 듯 사납게 일렁이고 있다. 이 그림은 대륙 동북부에 위치한 노르마크 지방에서 내려오는 동화 <세 개의 탑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 여자 마법사와의 약속을 어긴 왕이 이후 딸에게까지 이어지는 저주를 받아 왕국을 잃어버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탑 카드에 그려진 중앙의 탑은 여자 마법사가 바다 속에 세운 것으로, 자신의 저주가 마무리되자 왕의 나라와 함께 바다 속에 가라앉아 버렸다고 한다.
이 동화의 특이한 점은 그것이 전해 내려오는 지방이 노르마크라는 점에 있다. 이 노르마크라는 땅은 동쪽으로 하얀 산맥(White Mountains)을 넘지 않고는 바다를 볼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다시 말해, 바다에 면해 있지 않은 지역이라는 뜻이다. 그런 까닭에 과연
<세 개의 탑 이야기>에 등장하는 바다와 바닷가, 탑은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다 속에 가라앉아 버린 잊혀진 나라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얀 산맥 남쪽을 흐르는 아르나 강이 동쪽 바다로 나가는 알만딘 만은 이노스라는 작은 반도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이노스 반도의 끝인 나스그에름(땅의 끝) 곶에서 아르나의 눈빛을 한 연보랏빛 바다를 내려다보는 자들 가운데는 가라앉은 마을의 지붕들과 종탑을 언뜻 볼 수 있는 운 좋은 자들도 있다는 것이다.
무너지는 탑은 그때까지 익숙한 세계를 이루던 것이 모조리 무너져 내리고 전혀 다른 질서가 도래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탑 속에 감금되어 있던 것, 이제 곧 풀려날 그 힘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오랜 기만일 수도 있고, 모래 위에 쌓아 올리고 있던 신뢰의 성곽인지도 모른다. 감금이 깨어지는 순간, 늪 속에 가라앉아 있던 괴물이 불쑥 솟아올라 진흙투성이 팔을 휘두르며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하던 자아를 후려친다. 영원을 속삭이던 그림자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고 잔인한 현실의 파도가 밀어닥치고 나면, 갓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가련해진 존재는 자기 것이 아니었던 옷을 벗어 던지고 맨몸으로 차가운 물 속에서 헤엄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 거대한 변화는 기실 오래 전부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자신이 준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누구의 생애에든 격변의 시기는 반드시 다가오며, 변화 자체가 바로 다음의 성장을 위한 필요조건인 것이다. 변화를 막을 수는 없되, 변화를 준비하는 마음은 지혜롭다. 능히 변화를 받아들여 자신의 내면을 새로 태어나게 할 수 있는 자에게 있어 탑 카드는 충분히 저주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무너지는 탑을 억지로 일으키려 하는 자는 어리석다. 무너질 탑은 무너지고, 다시 새로운 곳에 새롭게 세워져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어린아이가 껍질을 깨뜨리고 일어나 성장을 시작하는 지점인 것이다.
그러면, 아룬드 스프레드의 두 번째 자리인 ‘암흑’에 놓인 탑 카드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암흑 아룬드 자체가 인생의 가장 어두운 면을 반영하고 있는 가운데, 그 자리에 탑 카드가 놓여졌다는 사실은 버티기 힘든 ‘절망과 고통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14아룬드 가운데 노장로 아룬드가 원인이 있는 불행이라면, 암흑 아룬드는 인간의 감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억울한 불행을 뜻한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든 나타나야 할 변화의 시점이 그에게는 솔직 담백한 혁신이 아니라 기분 나쁘게 뭉클거리는 암운의 덩어리로 덮쳐 오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최악의 결합’ 가운데 하나인 ‘암흑 아룬드와 탑 카드의 결합’을 버텨내는 일은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매우 어렵다. 사람은 스스로에게 커다란 변화가 오게 되면 보통 과거의 인생을 돌아보고 성찰하여 원인을 찾으려 하기 마련인데, ‘암흑 아룬드와 탑 카드의 결합’이 가져오는 충격은 그럴 여지를 완전히 앗아가 버린다. 느껴지는 것은 오직 부당한 징벌에 대한 원념과 절망 뿐으로 이러한 상태에서 자신의 운명을 성찰하는 것은 성자라 해도 어렵다.
이러한 운명이 약속된 자는 곧 닥칠 불합리한 악운을 어떻게든 견뎌내고 성장하여 늙고 난 후에야 어렴풋이 그 이유를 볼 수 있을 테고, 만일 견디지 못한다면 성찰할 기회조차 없이 광인, 또는 자포자기한 악인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